직장인의 글쓰기

글쓰기 학원에 천만 원 쓰고 깨달은 점

주드

2022.07.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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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노트북 앞에만 앉으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글을 써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았는데 매번 한자도 써 내려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애먼 학원만 들락거렸다. 6년 동안 글쓰기 학원에 쏟아부은 돈이 천만 원이다. 이렇게나 많이 강의를 들었지만 좀처럼 글 쓰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투자하는 돈과 글쓰기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만 증명됐다. 답답했다. 

 

내 문제는 뭘까. 일단 쓰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계속 써야 실력이 향상된다는데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글쓰기 과제를 못 낸 적이 많았다. 몇 번 내기는 했어도 좋은 평가를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선생님들은 좋게 좋게 말씀을 주셨으나 잘 들어보면 형편없다는 소리였다. 내용이 왔다 갔다 한다든지 설명이 부족하다든지 등이었다. 모두 기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글쓰기는 수능시험보다, 다이어트보다 더 어려웠다. 술술 써내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소원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1주에 2만 5천 원인 글쓰기 모임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합평하는 모임이었다. 꾸준히 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내가 흥미를 느끼고 계속 나갈 수 있는 모임을 찾아야 했다. 힙합을 좋아하기 때문에 힙합 저널리스트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3년을 썼다.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는데 글을 낸 적도 있고 안 낸 적도 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정말로 글쓰기로는 산전수전을 많이 겪은 느낌이다. 그 6년의 시간 동안 미약하지만 성과는 있다고 본다. 그리고 스스로 글쓰기 실력이 가장 크게 늘었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정확하게 있다. 그 지점은 5년 차에 찾아왔다. 작년에 출판을 준비하면 서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아 책 한 권은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진짜 책으로 내려고 했다. 욕도 정성스럽게 하니 읽을 만한 글이 됐다. 이때 글쓰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크게 왔다. 마치 득도를 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글을 써 내려가지 못했던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됐다.

 

그동안 글을 만족할 만큼 쓰지 못했던 이유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내 성격은 여드름을 잘 참는(?) 성격이다. 취직을 하고 꽤 오래 성인 여드름에 시달렸다. 그래서 피부과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여드름을 짰다. 여드름을 짜는 것은 정말 아프다. 피 묻은 솜이 그것을 증명한다. 여드름을 다 짜고 나면 수북이 쌓여 있다. 가는 피부과마다 간호사들은 내게 묻는다. 아프지 않으시냐며, 이렇게 여드름을 잘 참는 분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솔직히 참을만 하니까 참은 것이었다. 감정이나 아픔, 자극을 참는 역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또한 나는 한국의 장남 같은 장녀이기도 하다. 표현하는 데 서툰 성향이다. 살갑다는 여느 딸들과는 많이 다르다.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도 못 건네는 무뚝뚝한 성격이다. 밖에서 좋은 일이 있든 안 좋은 일이 있든 집에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보통 이런 모습은 내 친구들의 오빠들에게서나 볼 수 있다. 그 오빠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정도로 특별한 일이 별로 없었다. 무던한 성격이라 그렇다. 은근히 성격이 좋았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어떤 슬픔과 기쁨과 고통이 와도 그것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런 것들이 와도 참으며,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감정기복도 적다. SNS도 활발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런 성격의 영향이었다.

 

man in black jacket sitting beside black flat screen computer monitor 

 

이런 무던한 성격에 바위를 던져 급격한 파고를 만든 것이 회사다. 회사에 가니 고통의 연속이었다. 입사 2년 차부터 11년 차인 지금까지 퇴사할 궁리만 하고 있다. 출근하기 전부터 퇴근하고 싶고 일요일 밤에는 불을 끄기 싫었다. 이렇게 싫은 회사에 대한 마음을 글로 적어 내려가니 내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글로 쓰려면 우선 그것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들여다봐야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나때문이 아니라 회사 때문이라는 것을 설득하려면 노력이 필요했다. 이 경험이 내게 주관이라는 것을 찾아줬다. 글쓰기는 주관에서 시작됨을 알았다. 가장 싫어하는 회사가 글쓰기의 물꼬를 트여줬으니 고마워해야 할까. 그래도 회사는 웬수다. 

 

어쨌든 글쓰기에 천만 원을 투자하며 얻은 교훈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무던한 성격으로 세상에 흘려버렸던 감정이 너무 많았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글쓰기 선생님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을 전제로 했던 느낌이었다. 뭘 써야 할지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글감이 될 감정과 생각의 물꼬를 틔우는 선행단계가 있어야 했다. 글쓰기에는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인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 글쓰기가 고민이라고 말하면 써야 되는 것을 쓰지 말고,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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