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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가 경제와 산업을 뒤흔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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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지금 세계는 희토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단순한 자원이 아닌 전략 무기, 희토류가 미래의 권력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며 새로운 권력이 떠오르고 있다. 이름은 낯설지만 쓰임은 압도적인 17개의 금속, 희토류. 중국의 독점, 서구의 반격, 한국의 숙제가 뒤엉킨 공급망 전쟁에서 자원 안보는 곧 경제 안보다. ‘두 번째 검은 황금’을 선점하는 자가 미래의 지도를 다시 그릴 것이다.

 

 

세륨, 란타넘,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이트륨 등 대표적인 희토류 산화물 ©위키피디아

 

 

“지구의 심장을 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희토류稀土類, Rare Earth Elements는 스마트폰부터 전기차, 반도체, 풍력 터빈, 미사일까지 현대 산업의 거의 모든 핵심 기술을 떠받치는 ‘산업의 비타민’이다. 지각에는 널리 퍼져 있지만, 경제적으로 채굴하고 정제하기 어려워 ‘희귀 금속’이라 불린다. 17개 원소로 구성된 이 금속은 작고 가벼우면서 강한 자기력을 지니며, 전자파·열·빛을 제어하는 능력 덕분에 첨단산업의 신경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더 선명해지고, 전기차 모터가 더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며, 미사일이 더 정확해진 이유. 그 모든 진보의 이면에는 희토류가 있다. 이제 희토류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 시대의 ‘전략 무기’로 자리 잡았다.

 

 

 

중국이 쥔 패권, 그리고 제2의 희토류 위기

 

오늘날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희토류 시장의 절대 강자다. 전 세계 생산의 60%, 정제의 90%, 특히 고온 환경에서 필요한 중희토류는 거의 99%를 지배한다. 중희토류는 희토류 가운데 상대적으로 무겁고 희귀한 원소로, 전기차 모터나 방산 장비 등 고성능 자석의 핵심 소재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지배력은 점유율을 넘어 첨단산업의 심장을 쥔 독점 구조로 이어진다. 중국은 이미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을 전격 중단하며 자원이 외교적 압박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당시 일본의 기술 기업들이 멈춰 서자 ‘희토류 공급망’이라는 개념이 국제정치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2025년 봄, 중국은 다시 같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엔 훨씬 더 정교하고 치밀했다. 사마륨Samarium, 디스프로슘Dysprosium, 테르븀Terbium, 루테튬Lutetium 등 일곱 가지 핵심 희토류 원소의 수출 제한 조치가 발표되자 글로벌 시장이 즉각 요동쳤다. 한 달 사이 수출량은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일부 금속 가격은 세 배 이상 폭등했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 아거스 미디어에 따르면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의 가격은 5월 기준으로 전월 대비 300% 이상 상승했다. 특히 디스프로슘은 전기차 모터와 풍력 터빈의 영구자석 효율을 결정짓는 핵심 원소다. 이 금속이 없으면 자석의 내열성이 떨어지고, 모터는 고온에서 제 성능을 내지 못한다. 전기차 한 대에는 약 100g의 디스프로슘이 사용된다.

 

 

전기차의 모터 자석과 일부 배터리·전력 부품에는 희토류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군사 장비에도 희토류는 필수적이다. F-35약 400kg, 이지스 구축함약 2,200kg,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약 4,200kg 등에서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디스프로슘·테르븀 같은 중희토류가 핵심 모터·자석 부품의 ‘보이지 않는 연료’ 역할을 한다. 공급이 막히면 공장이 멈추고, 기술의 속도도 멈춘다. 작지만 결정적인 이 금속 하나가 ‘산업의 촉매이자 병목’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바꾸는 지정학적 무기이자, 세계 공급망의 약점을 쥔 트리거라 할 수 있다. 과거 석유가 전쟁의 도화선이었다면, 오늘날에는 희토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열쇠는 여전히 중국의 손안에 있다.

 

 

전투기·잠수함·미사일 등 현대의 첨단 무기 체계는 센서·자석·내열합금 등 여러 분야에서 희토류에 크게 의존한다.

 

 

 

미국과 유럽의 대응, ‘탈중국 공급망’의 실험

 

201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은 ‘희토류 독립’을 꿈꿨지만, 그 길은 험난했다. 희토류는 채굴보다 정제가 어렵고, 정제보다 분리가 훨씬 복잡하다. 이 과정에서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해 환경 규제에 막히기 일쑤였고, 그 결과 전 세계 정제 시설의 90% 이상이 중국에 집중되었다. ‘깨끗한 산업’을 추구한 서방의 환경 기준이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독점을 강화한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균열이 생기고 있다. 호주의 라이나스 레어 어스Lynas Rare Earths는 2025년 중국 밖에서 처음으로 디스프로슘 분리 가공에 성공하며 ‘중희토류 상업 생산 시대’를 열었다. 말레이시아 플랜트에 이어 호주 캘굴리Kalgoorlie에 가공 시설을 신설하고 ‘채굴–정제–분리’를 자국내에서 완결하는 순환형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미국은 더 직접적이다.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해 광산과 가공시설에 자금을 투입하고, 캘리포니아 마운틴패스Mountain Pass 광산을 중심으로 ‘미국형 공급망’을 복원하고 있다. 애플과 협업해 사용된 전자 기기에서 네오디뮴 자석을 회수·재활용하는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2025년 3월 트럼프 행정부가 발효한 ‘미국 광물 생산량 증대 행정명령’은 광산 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자원 안보를 산업 정책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 문제로 격상시켰다.

 

 

호주의 라이나스 레어 어스는 중국 이외 지역에서 ‘분리 희토류’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다. ©Lynas Rare Earths

 

 

캐나다의 서스캐처원 연구위원회SRC는 북미 최초로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NdPr 금속 생산 라인을 가동하며 월 40톤 규모의 생산에 돌입했다. 유럽도 에스토니아와 프랑스의 정제시설을 확충 중이며, 프랑스 라로셸La Rochelle의 솔베이Solvay 공장은 희토류 산화물 생산을 늘리면서 재활용 루프를 결합한 친환경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전체 수요를 충족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이 모든 시도의 핵심은 중희토류를 자국 내에서 채굴–분리–정제–제조로 완결하는 자급형 공급망 구축이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력·인프라·규모의 경제는 여전히 압도적이며, 희토류 산업은 단일 공정이 아니라 전 과정을 연결한 생태계로 작동한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2030년 전후에나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금의 움직임은 ‘탈중국’ 선언이 아니라, 자원 주권을 되찾기 위한 장기전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솔베이는 유럽 내에서 희토류 가공 및 정제 역량을 복원하고 강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Solvay

 

 

 

한국의 과제, 보이지 않는 아킬레스건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강국이지만, 희토류 원료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차, 2차전지,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이 모두 희토류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만큼 공급망이 흔들리면 국가 산업 경쟁력 전체가 위험해진다. 이에 따라 정부는 희토류 비축량을 기존 50일분에서 100일 이상으로 확대하고, 해외 자원 확보에 나섰다.

 

호주의 ASMAustralian Strategic Materials은 더보Dubbo 광산에서 생산한 희토류를 한국으로 들여와 2024년부터 연 5,000톤을 정제하고 있으며, 성림첨단산업은 대구 현풍에 네오디뮴 자석 공장을 완공해 국내 영구자석 제조 거점으로 부상했다. 이로써 한국은 채굴-제련-자석 제조로 연결되는 ‘탈중국 희토류 밸류체인’의 초석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원광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공급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자립은 요원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비축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를 전략적으로 분산하는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은 무기보다 자원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희토류는 이제 에너지와 안보, 기술 패권이 맞물린 ‘지정학적 자산’으로 변했다. 누가 전기차를 더 많이 만들고, 인공지능 칩을 더 빨리 공급하며, 첨단 무기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 그 경쟁의 중심에는 희토류가 있다. 19세기 제국들이 석유를 두고 벌였던 ‘검은 황금의 전쟁’이 21세기에는 ‘희토류 전쟁’으로 옮겨온 셈이다.

 

지금의 경쟁은 결국 미래 산업의 지도 자체를 바꾸는 게임이다. 2030년 이후 누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희토류 공급망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기술 패권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금속, 희토류를 지배하는 자가 곧 미래의 산업과 안보를 지배한다.

 

 

 

글. 김연규(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장)

#희토류 #공급망 #검은 황금 #자원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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